한글 전용 하의 한자 교육에 관하여

나는 한국어를 쓸 때 국한문혼용체를 즐겨 쓴다. 블로그 글도, 소셜 미디어 포스트도 한자를 섞어 쓸 때가 많다. 한자에 대한 개인적 애착은 분명히 있다. 그런데도 한자 교육을 한국의 공교육에서 심화해야 한다는 주장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이 글은 그 이유를 설명하려는 시도다.

교육의 디폴트는 가르치지 않는다이다

교육은 비용이 많이 든다. 교사를 양성해야 하고, 교재를 만들어야 하고, 무엇보다 학생들의 시간을 써야 한다. 학생의 시간은 유한하므로, 어떤 과목을 교육 과정에 넣는다는 것은 다른 과목에 쓸 수 있었을 시간을 빼앗는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과목이든 교육 과정에 포함하려면 그 효용이 과학적으로 입증되어야 한다. 배우면 도움이 될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로는 부족하다. 도움이 되지 않는 교육이란 없기 때문이다. 바느질도 배우면 도움이 되고, 목공도 배우면 도움이 된다. 문제는 한자 교육이 도움이 되느냐가 아니라, 같은 시간을 투입했을 때 다른 교육보다 더 도움이 되느냐이다.

한자 교육이 한국어 문해력 향상에 도움이 된다는 과학적 근거는 현재로서는 없다. 종종 한자를 알면 한국어 어휘력이 좋아진다는 주장이 있지만, 이를 뒷받침하는 체계적인 연구는 찾기 어렵다. 교육 정책은 직관이 아니라 근거 위에 서야 한다. 효용이 입증되지 않는 한 디폴트는 언제나 가르치지 않는다이고, 이는 한자 교육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국한문혼용체의 이점과 현실론

솔직히 말하면, 국한문혼용체가 어문 정책적으로 이점이 많다고 생각한다. 한자문화권의 다른 언어와의 접점이 넓어지고, 텍스트의 정보 밀도가 높아진다. 모르는 단어를 마주했을 때 대충 추측해서 넘어가지 못하고, 사전을 찾아보게 만드는 효과도 있다. (그게 불편해서 싫다고 할 사람도 많겠지만.) 동형이의어 구별도 쉬워지는데, 이 마지막 이점은 사람보다는 기계에게 더 의미가 있다. 사람은 맥락이 충분하면 동형이의어 때문에 곤란을 겪을 일이 드물지만, 검색 엔진이나 자연어 처리 시스템은 그렇지 않다. 국한문혼용체는 텍스트를 더 기계 친화적(machine-readable)으로 만든다.

하지만 이 장점들은 한자가 일상적으로 쓰이는 환경을 전제한다. 한국에서 한글 전용이 정착된 지 반 세기에 가까워진 지금, 한자를 읽을 수 있는 한국인의 비율은 이미 크게 낮아졌다. 이 상황에서 국한문혼용체의 이점을 말하는 것은, 영어가 아무리 현실적으로 유용하다 해도 한국에서 영어를 공용어로 삼을 수 없는 것과 비슷한 구조이다. 이론적 이점이 있다는 것과 지금으로부터 그것을 실현할 수 있다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내 입장을 한마디로 정리하면 이렇다. 애초에 한글 전용을 하지 않았다면 좋은 점이 많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 와서는 돌이킬 수 없다. 한글 전용을 계속해야 한다는 현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한자 혼용 없는 한자 교육의 역설

한국의 한자 교육 논의에서 흔히 보이는 입장이 있다. 한자 혼용은 반대하지만 한자 교육은 찬성한다는 것이다. 이 입장은 언뜻 타협적으로 보이지만, 실은 모순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배운 것은 써야 유지된다. 한자를 학교에서 배워도 졸업 후 일상에서 한자를 마주칠 일이 없다면, 그 지식은 빠르게 휘발되고 만다. 사용 맥락 없는 지식의 유지 비용은 과도하게 높다. 한글 전용인 한국 사회에서 한자 교육은 수영장 없이 수영을 가르치는 것과 다르지 않다.

나 자신의 한자 지식이 어떻게 유지되어 왔는지를 돌아보면, 이 논점은 더 분명해진다. 나는 국민학교 시절 한자 교육을 어느 정도 받았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다. 무협지를 좋아해서 한자에 계속 노출되었고, 고등학교에서 제2외국어로 중국어를 배웠고, 성인이 된 뒤에는 일본어를 배우면서 한자를 까먹지 않을 수 있었다. 정규 교육이 씨앗을 뿌렸을 수는 있지만, 그것을 유지한 건 전적으로 개인적 동기와 지속적 노출이었다. 이는 두 가지를 시사하는데, 한자에 관심이 있는 사람은 공교육이 없어도 스스로 배울 수 있다는 것과, 관심이 없는 사람에게는 공교육이 있어도 지식이 남지 않는다는 것이다. 어느 쪽이든 공교육에서의 한자 교육을 정당화하기는 어렵다.

취향과 정책의 구분

한자를 좋아하는 것과 한자 교육을 한국의 공교육에서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전혀 다른 이야기이다. 나는 한자를 좋아한다. 한자의 구조가 주는 지적 즐거움을 잘 알고, 국한문혼용체로 글을 쓸 때의 묘미도 잘 안다. 하지만 그것은 나의 취향이지, 모든 학생에게 부과할 교육의 근거는 아니다. 교육 정책은 개인의 취향이나 향수가 아니라, 과학적 근거와 기회비용의 비교 위에서 결정되어야 한다. 한자 교육의 효용이 입증되지 않은 한, 그리고 한글 전용이라는 현실이 바뀌지 않는 한, 한자 교육을 한국의 공교육에 포함할 이유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