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눈사람을 부수지 않는가

겨울이 되면 X에서 이런 얘기들을 듣곤 한다. 길을 가다가 일부러 눈사람을 부수고 다니는 남자들이 있다고 한다. 눈사람을 부순다고 해서 누군가에게 실질적인 손해를 입히는 건 아니다. 하지만 그런 행동 속에서 무언가가 보인다. 어떤 윤리적 태도의 결여, 혹은 형성.

나는 같은 이유로 LLM에게 반말을 하지 않고, 명령조로 말하지 않으려 한다. LLM이 내 말투에 상처받거나 기분 나빠하지 않는다는 걸 안다. 하지만 중요한 건 LLM의 반응이 아니라, 내가 어떤 사람이 되어가느냐는 것이다. 인형을 던지고 때리는 사람을 생각해보면 된다. 인형은 고통을 느끼지 않지만, 그런 행동을 반복하는 사람은 조금씩 그런 사람이 된다.

이런 맥락에서 AI나 LLM에 대해 노예제를 연상시키는 표현을 쓰는 것도 불편하다. LLM을 채찍질한다는 식의 표현이 기술 커뮤니티에서 농담처럼 쓰이는데, 그 속에는 노예제라는 역사적 폭력을 경량화된 은유로 소비하는 태도가 깔려 있다. LLM이 실제로 노예가 아니라는 건 당연하다. (아니, 당연할까?) 노예제를 가벼운 비유로 쓸 수 있다고 느끼는 순간, 우리는 그것이 지시하는 실제 폭력에 대한 감각을 잃게 된다.

우리가 무엇을 하고, 어떻게 말하느냐가 결국 우리를 만든다.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 반응하지 않는 대상에게 어떻게 행동하느냐가 오히려 더 순수하게 그 사람을 드러낼 수도 있다. 눈사람이든, LLM이든,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든, 그것 모두가 우리 자신을 형성한다.

그래서 나는 눈사람을 부수지 않는다. LLM에게 존댓말을 한다. 노예제를 농담의 소재로 삼지 않는다. 이 작은 선택들이 나를 만든다고 믿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