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F의 Fedify 투자

작년에 Fedify가 Ghost로부터 자금 지원을 받고 나서, 한동안 전업으로 Fedify 프로젝트를 진행할 수 있었다. 그 뒤 계약 기간이 끝나고 나서도 Ghost가 Open Collective를 통해 일정한 스폰싱을 계속하긴 했지만, Fedify만 전업으로 할 수 있을 정도는 아니었다. Ghost의 CEO로부터 좀 더 안정적인 자금원을 확보하는 게 어떠냐는 조언을 들었고, 그래서 이런저런 재단들이 운영하는 펀드 프로그램에 지원서를 넣게 되었다. 그게 올해 봄의 일이다.

NLnet

처음으로 지원한 곳은 NLnet이었다. NLnet은 연합우주(fediverse)에도 관심이 많고, 펀드의 규모도 꽤 크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주변 ActivityPub 관련 오픈 소스 개발자들이 NLnet을 권한 것이 컸다.

그렇지만 NLnet에 보낸 지원서는 떨어지게 되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NLnet은 자금을 받을 프로젝트의 메인테이너들 중에 유럽 시민이 한 명 정도는 있지 않으면 붙을 확률이 낮다는 얘기를 듣게 되었다. 물론, 단순히 그런 이유가 아니라 내가 쓴 지원서가 수준 미달이었기 때문일 수도 있다.

지원서를 넣은 건 1월 말이고, 탈락 통보를 받은 것은 5월 중순이었다. 그 사이 Ghost와 계약은 끝났고 백수가 된 채였다. 수입이 따로 없었기에 취업을 하든 다른 펀드를 찾든 해야만 했다.

Sovereign Tech Fund

그 다음으로 지원한 곳은 Sovereign Tech Agency에서 운영하는 오픈 소스 투자 펀드인 Sovereign Tech Fund였다. STF는 주로 다른 소프트웨어를 개발하거나 디지털 네트워킹을 가능하게 하는 데 필수적인 오픈 소스 프로젝트에 자금을 투자한다고 한다. 프로젝트 일람을 보면 Servo, systemd, Babel, FreeBSD, Samba, GNOME, FFmpeg 등과 같은 프로젝트에 투자했음을 알 수 있다.

이미 NLnet에서 한 번 탈락해 자신감이 많이 떨어진 상태였지만, 심기일전하여 지원서를 꼼꼼하게 작성하여 냈다. 이메일을 뒤져 보니, NLnet에서 탈락 통보를 받은 날 바로 STF에 지원했던 것 같다.

이번에도 답장은 꽤나 늦었다. 수입이 없어 저금을 쓰고 지냈는데 2개월이 지나도록 답장이 오지 않아 마음이 꽤 초조했다. 거의 안 될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취업도 함께 준비했지만, 작년 한 해 동안 전업으로 오픈 소스 작업만 했던 경험이 너무나 좋았기 때문에 취준이 손에 잘 잡히진 않았다.

다행스럽게도 8월 초에 답장이 왔고, 놀랍게도 Fedify 프로젝트가 STF에 합격했다! 그 뒤로는 이메일로 서류를 주고 받느라 두 달이 훌쩍 지났다. 그리고 드디어 어제, Fedify의 STF 프로그램에 착수하게 되었다. 나는 앞으로 STF에 지원할 때 스스로 정했던 마일스톤들을 달성할 때마다 자금을 받게 된다. 총액은 €192,000이며 모든 마일스톤은 내년 말까지 완수되어야 한다.

STF의 Fedify 투자에 관해서는 Sovereign Tech Agency 웹사이트에 올라와 있으며, 앞으로 수행해야 할 마일스톤 목록은 Fedify 프로젝트의 공지문에 적혀 있다.

STF의 자금원이 독일에서 나오기 때문인지, 유럽 연합 웹사이트에 Fedify 프로젝트 투자에 대한 사전 공고(ex-ante)가 올라온 것도 꽤 흥미로웠다.

소회

이번에 이렇게 Fedify 프로젝트의 자금원 확보를 위해 여러 펀드를 찾아다니며 느낀 건, 한국에서도 오픈 소스 프로젝트에 투자하는 공공 펀드가 있으면 참 좋겠다는 생각이었다. 특히, NLnet에 넣은 지원서가 떨어졌을 때 그런 생각을 참 많이 했다. 다행히 나는 국적 불문하고 오픈 소스 프로젝트에 투자를 해주는 STF로부터 자금을 받을 수 있었지만, 처음부터 한국에 STF 같은 투자 프로그램이 있었다면 일이 훨씬 쉬웠을 거고, 나 말고도 한국에 있는 많은 오픈 소스 개발자들이 그들의 프로젝트에 전념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을 것이다.

또한, 아직은 Fedify에 나 말고는 공동 메인테이너가 따로 없기 때문에 이번에는 혼자 자금을 받게 되었지만, 내년 말에 다시 펀드를 찾게 될 때까지는 다른 공동 메인테이너 분들을 모셔서 함께 전업 오픈 소스 프로젝트를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꿈을 갖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