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계 없는 페미니즘》
《경계 없는 페미니즘》은 2018년 즈음 제주도에 있는 예멘 난민의 추방을 요구하는 세론에 대해 상호교차성에 입각해 여러 페미니스트들이 회답하는 글을 게재한, 같은 이름의 페이스북 페이지의 글들을 엮어 책으로 낸 것이다. 머리말 〈우리의 말은 여전히 작고 느리고 희미하지만〉과 맨 마지막의 〈다시 경계 없는 페미니즘을 위하여〉를 제외한 모든 글은 저 페이스북 페이지에 그대로 남아 있다.
애초에 이 책을 엮는 프로젝트를 알고 후원할 수 있었던 것도 그 페이스북 페이지를 구독하고 있었기 때문이라, 실은 이미 읽은 글도 많았다. 그렇지만 못 읽고 놓진 글이 더 많았고, 반 이상 읽을 때까지 이미 읽은 글이라는 것을 눈치 채지 못할 만큼 가물가물해진 글도 많았다. 이미 읽은 글도 다시 읽으니 새로웠다.
책을 받은 것은 2019년 가을인데, 그 해 끝자락부터 아주 천천히 읽었다. 어려운 내용도 많았고 한 고작 문단 읽고서 한참을 생각할 때도 많았다. 하루에 글 하나씩 읽었던 것 같다. 잘 읽히지 않아도 그냥 앞에서부터 순서대로 읽었다. 글은 페이스북 페이지에 올라온 순서와는 다르게, 크게 네 가지 주제에 맞춰 다시 나열됐고, 그 편집 그대로 읽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도리어 그 때문에 더 읽기 어렵고 산만하기도 했다. 모두 다른 사람이 하나의 사건을 갖고 썼고, 게다가 상호교차성을 받아들인 페미니스트들이라는 동질성까지 합쳐져, 중요한 메시지들은 거의 모든 글에서 겹쳐서 나왔다. 했던 얘기를 계속 들으니 잊어버릴 새는 없었지만, 글 하나하나가 참 좋았음에도 이어서 읽기에는 힘들었다.
내가 한참 읽는 동안에는 예비역 하사 변희수 씨가 성재지정수술을 받은 뒤 육군에서 강제전역된 일이나 트랜스젠더 숙명여대 합격생이 학내 반대 여론에 입학을 포기한 일이 있었고, 이 사건들은 자연스럽게 책의 메시지를 생각할 때 함께 떠오를 수밖에 없었다.
모든 글이 다 무겁게 다가왔지만, 읽는 동안 메모했던 곳들을 인용해본다:
(…) 여성혐오는 남성중심적 사회의 편의를 위해 구조가 간편하게 발전시킨 편견임을 포착했듯이 말입니다. (…) 그래서 환대는 그 행위에 잇따르는 고민과 문제들 또한 우리가 감히 감수하겠다는 의지적 선언입니다. 더 나아가 그 과정에서 고민을 함께 줄여나가고, 문제들을 최소화 하겠다는 정치적인 움직임입니다. 아무런 ‘문제’가 없을 때 타자를 환영하고 수용하는 것은 어렵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예찬 〈퀴어로서 난민을 환대해야 하는 이유〉
한 사회의 차별과 억압을 생각할 때면, 그 차별과 억압에 맞서 싸우는 사람들의 존재도 언제나 같이 떠올려야 한다. 그들은 도움을 받아야 할 대상이라기보다 자기들이 처한 상황을 딛고 현재와 미래를 조직하는 주체다. 그들의 싸움에 연대하고자 한다면, 우리 자신이 그들의 사정에 무지할 수 있고 그렇게 무지하다는 사실에 대해서도 무지할 수 있음을 엄격하게 인정하는 데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묻고 듣고 배우려는 마음으로, 정말로 힘을 보태자는 의지를 가지고, 선입견 없이, 사려 깊게 말이다. 이것은 응답하기 위한 최소한의 준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