責任(책임)()하여

()을 고른 것은 亦是(역시) 아무래도 徐京植(서경식) 先生(선생)著書(저서)이기 때문이라 해야 할 것이다。몇 해 () 읽었던 『難民(난민)國民(국민) 사이』가 요 몇 해 사이에 내 생각을 가장 많이 바꾸게 한 () 가운데 하나이기 때문에、아무래도 徐京植(서경식) 先生(선생)()은 나오는 대로 찾아 읽으려 하는 便()이다。(아직 日本語(일본어) 읽기가 빠르지 못해 原書(원서)를 읽을 엄두는 내지 못하고 있지만…)

責任(책임)()하여』(責任について)는 徐京植(서경식) 先生(선생)高橋哲哉(다카하시 데쓰야) 先生(선생)對談(대담)을 엮은 것으로、애써 짧게 줄여 보자면: 現代(현대) 日本(일본)의 되다 만、그래서 마침내는 後退(후퇴)하고 있는 責任(책임) 意識(의식)을 이야기한다。()히 여기서는 現代(현대) 日本(일본)의 리버럴이 얼마나 알맹이가 없는지를 낱낱이 드러내고 있는데、이를테면 아래는 高橋(다카하시) 先生(선생) 스스로는 어땠는가에 ()해 말하고 있다:

古代(고대) 그리스 以來(이래)西洋(서양) 哲學(철학)傳統(전통)과 같은 것이 一旦(일단) 破產(파산)했다고 할 수밖에 없는 地點(지점)에서 各自(각자) 思考(사고)始作(시작)하지 않으면 안 된다、그런 狀況(상황)에서 20世紀(세기)思想(사상)이 나오고 있습니다。그런데 그것을 日本(일본)에 가지고 오면 그저 「工夫(공부)」의 對象(대상)밖에 되지 않는 構造(구조)堅固(견고)하게 存在(존재)해요。나 自身(자신)도 그런 속에서 자랐으니까 完全(완전)히 벗어났다고는 여기지 않지만、空虛(공허)한 생각에 사로잡힐 때가 많아져서 이대로는 아무래도 滿足(만족)할 수 없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은 새로운 知識(지식)보다는、얼기설기 알고 있던 問題(문제)들을 一貫(일관)意識(의식)으로 照明(조명)하여 더 깊게 생각해 볼 機會(기회)를 많이 주었다。沖繩(오키나와)美軍(미군) 基地(기지) 問題(문제)福島(후쿠시마) 原電(원전) 事故(사고) 問題(문제)는 따로 그것만 다루는 ()을 읽어보지는 못해 具體的(구체적)으로는 잘 몰랐지만、여러 言論(언론) 報道(보도)日本(일본)現代史(현대사)政治(정치)를 다루는 글에서 지나가며 言及(언급)될 때가 많아 조금은 익숙한 主題(주제)였고、1 事實(사실) 모르는 事件(사건)이나 人名(인명)이 나와도 하나하나 찾아가며 읽지는 않았다。

以下(이하)는 읽는 동안 밑줄 쳐둔 곳이나 메모한 것들을 함께 적는다。


이는 元島等(모토시마 히토시) 長崎(나가사키) 市長(시장)昭和(쇼와) 天皇(천황)에게 戰爭(전쟁) 責任(책임)이 있다고 말했다가 右翼(우익) 勢力(세력)에게 狙擊(저격)당했을 때(1990() 1() 18())、全體(전체) 매스컴이 한 목소리로 言論(언론)自由(자유)()暴力(폭력)容納(용납)될 수 없다라고 했던 論調(논조)와도 겹칩니다。天皇(천황)에게 戰爭(전쟁) 責任(책임)이 있다는 元島(모토시마) ()主張(주장)()自身(자신)들의 見解(견해)提示(제시)하지 않았어요。그것이 ()空虛(공허)主體(주체)지요。言論(언론)自由(자유)를 지켜라라고 하면서 어떤 言論(언론)인지는 말하지 않고 回避(회피)했습니다。

言論(언론)一切(일절)價値(가치) 判斷(판단)()하려고만 한다면 (아니、이도 좋게 봐준 것이고、責任(책임)을 져야 할 때만 쏙 빠지려고 한다면) 그 言論(언론)에게 주어지는 無制限(무제한)自由(자유)라는 것이 얼마나 價値(가치)가 있는 것일까。


그저 悚懼(송구)스럽다는 態度(태도)()해 온 사람들일수록 견디지를 못합니다。그런 態度(태도)日本(일본) 知識人(지식인)들의 아시아에 ()한、朝鮮(조선)()한、中國(중국)()接近(접근) 方式(방식) 속에 있었고 그 ()의 뿌리가 깊어서、內容(내용)은 없이 그저 罪悚(죄송)하다는 一種(일종)의 코드밖에 없었으므로、그것이 逆轉(역전)되는 瞬間(순간)內容(내용)도 사라져 버리지요。그런 方式(방식)이 아닌、어떤 問題(문제)責任(책임)이 있는가、어떤 責任(책임)이 있는가、나는 어느 部分(부분)()責任(책임)을 느껴야 하는가、라는 分節化(분절화)認識(인식)을 하지 못하고 그냥 통째로 日本人(일본인)이 옳은가/朝鮮人(조선인)이 옳은가、라는 ()思考(사고)밖에 할 수 없게 되었지요。

一種(일종)의 코드밖에 없態度(태도)、여러 人權(인권) 問題(문제)에서도 쉽게 볼 수 있는 듯。


그것은 1990年代(년대)에 나온 페미니즘과、그런 人間(인간) 解放(해방)이나 民族(민족) 解放(해방)交叉(교차)하는 地點(지점)에서 끊임없이 提起(제기)되는 論點(논점)이지요。多數派(다수파) 女性(여성)多數派(다수파)圈內(권내)에서 女性(여성)權利(권리)主張(주장)한다/多數派(다수파)로서의 파이 配當(배당) 몫을 다투고 있다/多數派(다수파) 男性(남성)과의 均衡(균형)을 다투고 있다는 것인데、그 自體(자체)反論(반론)할 수 없지만 그 多數派(다수파)構成(구성)하는 國家(국가)植民地(식민지)抑壓(억압)하거나 收奪(수탈)境遇(경우)에、多數派(다수파) 內部(내부)矛盾(모순)問題(문제) 삼는다면 結果的(결과적)으로 植民地的(식민지적) 關係(관계)承認(승인)하는 構造(구조)를 만듭니다。

旣視感(기시감)。우리가 相互交叉性(상호교차성)(intersectionality)에 눈 감아서는 안 되는 理由(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美國(미국)()抑壓(억압)받고 收奪(수탈) ()하는 地域(지역)의 사람들로서는 帝國主義(제국주의)植民主義(식민주의)의 멍에에서 解放(해방)되는 것이 1次的(차적) 課題(과제)인 데 ()해、美國(미국) 國民(국민)=市民(시민)은 「파이」를 얼마나 「公正(공정)」하게 分配(분배)받을지가 課題(과제)입니다。따라서 「파이」가 커지는 것 自體(자체)() 植民地的(식민지적) 收奪(수탈) 自體(자체)()根源的(근원적)抵抗(저항)은 일어나기 어렵습니다。多數派(다수파)多數(다수)內面化(내면화)植民主義的(식민주의적)心性(심성)이 그것을 困難(곤란)하게 만드는 障壁(장벽)입니다。


歷史的(역사적) 事件(사건)이 일어난 타이밍이 日本(일본)右派(우파) 勢力(세력)에게 順風(순풍)이 되었다고 할 수 있겠군요。즉 冷戰(냉전) 構造(구조)崩壞(붕괴)同時(동시)()아시아에 戰爭(전쟁) 被害者(피해자)들이 나타났습니다。그러나 冷戰(냉전) 構造(구조)崩壞(붕괴)는 이른바 左翼(좌익) 人士(인사)들이 自信(자신)完全(완전)히 잃어버린 事件(사건)이었으므로 左翼的(좌익적)基盤(기반) 위에 存在(존재)하고 있던 勞動組合(노동조합)()컨대 右派(우파)實體(실체) 以上(이상)으로 敵對視(적대시)하는 日敎組(일교조)도 흔들렸기 때문에 人權(인권) 敎育(교육)이나 平和(평화) 敎育(교육)對應(대응)弱化(약화)되었지요。아마도 敎師(교사) 한 사람 한 사람이 人權(인권)이나 平和(평화) 問題(문제)自身(자신)思想(사상)으로 內面化(내면화)하지 못했기 때문이 아니냐는 생각이 듭니다。

冷戰(냉전)解體(해체)被害者(피해자)들을 억누르던 힘을 緩和(완화)시켰지만、그러면서도 民主化(민주화)를 스스로 爭取(쟁취)하지 않은 日本(일본) 리버럴의 바닥을 무너뜨리기도 했다고 보는 徐京植(서경식) 先生(선생)


加藤周一(가토 슈이치) ()樋口陽一(히구시 요이치) ()對談集(대담집)(『時代を読む―「民族」「人権」の再考』、小学館(소학관)、1997())을 읽고 衝擊(충격)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두 사람 모두 日本(일본)이 길을 잘못 든 것은 滿洲(만주) 事變(사변)(1931()) 以後(이후)라고 認識(인식)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滿洲(만주) 事變(사변) 무렵에는 日本(일본)이 이미 植民地(식민지) 帝國(제국)이 되었는데도 말이지요。() 그러면 어찌 되는고 하니、戰後(전후) 民主主義(민주주의)代表(대표)하는 리버럴() 知識人(지식인)들의 歷史(역사) 認識(인식)安倍晋三(아베 신조) 總理(총리)戰後(전후) 70() 談話(담화)歷史(역사) 認識(인식)이 어떤 意味(의미)에서는 連結(연결)되어 버립니다。


() 杉田(스기타) ()2境遇(경우)는 (…) 그때 나에게 () 先生(선생)民族(민족)·國家(국가) 같은 觀念(관념)은 낡았으니 버리는 것이 좋아요라고 말했습니다。

高橋(다카하시) 음、日本人(일본인)在日(재일) 朝鮮人(조선인)에게 할 수 있는 말일까 하는 느낌이 드는군요。포스트모더니즘을 빠져나간 日本(일본) 知識人(지식인)()에서는 民族(민족)이나 國家(국가)簡單(간단)하게 넘어서는 것이 可能(가능)한 듯이 말하는 사람이 많아요。하지만 國家(국가)를 「觀念(관념)」으로 내버릴 수 있는 듯이 생각해도、現實的(현실적)으로 國家(국가)를 버릴 수 있느냐 하면 그리 簡單(간단)치 않습니다。頻繁(빈번)國際(국제) 심포지엄에 參加(참가)하고 「國境(국경)을 넘는」 知識人(지식인)으로 活動(활동)하고 있을 사람들도 日本(일본) 政府(정부)發行(발행)旅券(여권)保護(보호)를 받고 移動(이동)하는 處地(처지)여서、國家(국가)超越(초월)한다라고 主張(주장)하는 사람들이、알고 보니 약삭빠르게도 國立大學(국립 대학) 敎員(교원)이더라 하는 境遇(경우)가 드물지 않습니다。

위 얘기는 포스트콜로니얼 硏究(연구)를 묻는다 섹션에서 가져온 것인데、그 섹션에서는 이어서 内田樹(우치다 다츠루)話題(화제)가 옮겨간다。()가 막히는 引用(인용)들。아마 지난해(2019())에 韓國(한국) 言論(언론)에서도 破局(파국) 願望(원망) 같은 것으로 貿易(무역) 報復(보복)()해 말했던가。좀 세게 얘기하자면 이쯤 되면 韓男(한남) 리버럴과 거의 거울과 같은 이야기들 아닌가。아니、韓國(한국) 리버럴이 보고 배운 原本(원본)이니 當然(당연)하다고 해야 하는 것인지。


()컨대 福島(후쿠시마) 番號版(번호판)을 단 ()駐車(주차)하려 하면 가까이 오지 말라고 한다거나、避難(피난) 온 아이들이 避難地(피난지)學校(학교)에서 따돌림을 ()하기도 하지요。크게 보면 近代(근대) 日本(일본)이 그런 分斷(분단)差別(차별) 위에 만들어진 植民(식민) 帝國(제국)인데 그 構造(구조)只今(지금)日本(일본) 社會(사회)에서도 有效(유효)하게 機能(기능)하고 있습니다。

差別(차별) 構造(구조)는 그러한 秩序(질서)를 (積極的(적극적)이든 非自發的(비자발적)이든) 承認(승인)한 모두가 差別(차별) ()하도록 만든다。누가 더 나중에 ()하냐、누가 더 많이 ()하냐만 다를 뿐이다。코로나19로 드러난 「武漢(우한)中華人民共和國(중화 인민 공화국)中華(중화)()아시아」의 체인을 봐도 알 수 있다。


電氣(전기)는 모두가 日常的(일상적)으로 享有(향유)하는 것이고 自身(자신)들의 豊盛(풍성)消費(소비) 生活(생활)을 떠받치고 있지요—그 에너지()으로서 原電(원전)國策(국책)으로 推進(추진)해 왔고 種種(종종) 事故(사고)를 일으켰다、이것은 不運(불운)한 일이고 ()히 큰 被害(피해)를 입은 福島(후쿠시마) 사람들에게는 아마 最惡(최악)이었겠지만 그것을 굳이 加害(가해)/被害(피해) 같은 對立(대립) 構圖(구도)로 볼 필요는 없지 않나、라는 것이 리버럴한 사람들까지 包含(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共有(공유)하는 感覺(감각) 아닐까요。그러나 () 先生(선생)이 말씀하신 대로、原電(원전) 事故(사고)加害(가해) 行爲(행위)이며 自國民(자국민)만이 아니라 近隣(근린) 諸國(제국) 사람들에게도 被害(피해)를 주고 再稼動(재가동)하면 放射性(방사성) 廢棄物(폐기물)을 자꾸 蓄積(축적)해서 未來(미래) 世代(세대)危險(위험)(risk)을 높입니다。따라서 그 事故(사고)가 일어나고 얼마 뒤에 깨달은 것은 日本(일본) 列島(열도)에 이렇게 많은 原電(원전)建設(건설)時代(시대)高度(고도) 經濟(경제) 成長期(성장기)에 태어나 자라고 成人(성인)이 된 우리 世代(세대)야말로 加害(가해) 責任(책임)當事者(당사자)들이라는 事實(사실)입니다。


체르노빌의 목소리』(Чернобыльская молитва)로 노벨 文學賞(문학상)을 받은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Светлана Александровна Алексие́вич)가 2000() 訪日(방일)했을 때 들었다는 소리:

그녀가 말하기를、그 ()日本(일본)에 왔을 때 當身(당신)들 나라는 社會主義(사회주의) 國家(국가)여서 管理(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아 原電(원전) 事故(사고)가 났지만、日本(일본)에서는 일어나지 않아요라는 말을 들었다고 해요。日本(일본)뿐만 아니라 프랑스나 다른 나라들에서도 같은 말을 들었다고 합니다。


나는 여러 가지 問題(문제)右派(우파)로부터 種種(종종) 攻擊(공격)을 받아 왔습니다만、이 主張(주장)()해서는 오히려 左派(좌파)로부터 反撥(반발)抵抗(저항)()해서 놀랐습니다。戰後(전후) 左翼(좌익)至上(지상) 命令(명령)으로 삼아 온 「安保(안보) 反對(반대)」를 否定(부정)하는 것이라고 생각했겠지요。本土(본토)護憲派(호헌파)나 리버럴()는 이 主張(주장)介入(개입)하면 沖繩(오키나와)植民者(식민자)로서의 立場(입장)()直接的(직접적)問題(문제) 提起(제기)가 나올까 봐 걱정해서인지 沈默(침묵)無視(무시)一貫(일관)하는 사람도 많습니다。하지만 沖繩(오키나와)運動系(운동계)知識人(지식인) 世界(세계)에는 本土(본토) 以上(이상)으로 ()反安保(반안보)·反基地(반기지) 運動(운동)歷史(역사)가 있기 때문에、()은 요즘 沖繩(오키나와) ()의 다른 主張(주장)들과 큰 論爭(논쟁)이 벌어지기도 합니다。沖繩(오키나와)一般人(일반인)들 사이에는 縣外(현외) 移轉(이전)當然(당연)하다는 意識(의식)擴散(확산)되는 한()으로、「本土(본토)」가 「引受(인수)한다」는 데에 反對(반대)하는 知識人(지식인)이 있습니다。

거듭 나타나는、差別(차별)·植民(식민) 構造(구조)連鎖(연쇄)·「겹들」로 ()한、被植民地(피식민지) 사이에서의 葛藤(갈등)


沖繩(오키나와)()해서 「惡魔(악마)의 섬」이라고 말할 것이 아니라 「本土(본토)」의 「中心部(중심부) 日本(일본) 國民(국민)」이 그 汚名(오명)을 덮어써야 합니다。그런 汚名(오명)을 덮어쓰고 싶지 않다면 自身(자신)들의 意思(의사)와 힘으로 그것을 그만두어야 합니다。只今(지금) 이야기하는 ()으로 말하자면、安保(안보) 體制(체제)選擇(선택)한 「本土(본토)」가 反擊(반격)()하더라도 괜찮냐는 論議(논의)를 「本土(본토)」에서 해야 합니다。

安保(안보) 體制(체제)라는 것을 決定(결정)(그것 또한 強要(강요)된 것이긴 하다)했지만 그 責任(책임)沖繩(오키나와)에 떠넘겼다—그리고 그대로 움직이지 않으며 完全(완전)安保(안보) 體制(체제)를 벗어나자는 主張(주장)原論的(원론적)으로만 되풀이한다。그런데 本土(본토) ()에서도 아마 마이너리티일 그들의 目標(목표)現實化(현실화)할 수 없는 까닭은、本土(본토)의 마이너리티가 그들이 받아들인 安保(안보) 體制(체제)植民(식민) 支配(지배)體驗(체험)하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나도 現實(현실) 속에서 作動(작동)하는 權力關係(권력관계) 속에 있는 것이 分明(분명)한데、그것을 一擧(일거)에 뛰어넘으려 하는 내가 아이덴티티에 拘礙(구애)받지 않는 越境者(월경자)라거나 在日(재일) 日本人(일본인)이라거나、國家(국가)民族(민족)離脫(이탈)한 「難民(난민)」이고、內的(내적) 亡命者(망명자)임이 分明(분명)하다는 ()의 말들을 합니다。그러나 그것은 觀念(관념) 속의 이야기이며、日本(일본) 國民(국민)現實(현실) 속에 存在(존재)하고 그 속에 沖繩(오키나와)()差別(차별) 構造(구조)가 있지요。現實(현실)存在(존재)하는 權力(권력) 構造(구조)直視(직시)하고 그것과 對峙(대치)하며 그것을 바꾸어 감으로써 비로소 더 넓은 次元(차원)으로 나아갈 수 있지 않은가。그런 過程(과정)省略(생략)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發言(발언)高橋(다카하시) 先生(선생)이 한 것이지만、徐京植(서경식) 先生(선생)의 『難民(난민)國民(국민) 사이』에서는 民族性(민족성) 乃至(내지)는 내셔널리티 같은 아이덴티티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에 ()해 (韓國(한국) 같은 多樣性(다양성)이 떨어지는 곳에서 메이저리티로 살아온 사람에게는 잘 떠올리지 못하는) 아주 重要(중요)觀點(관점)을 짚는다。在日(재일) 朝鮮人(조선인)이 스스로를 日本人(일본인)이 아니라 朝鮮人(조선인)으로 正體化(정체화)한다면、이것은 먼저 日本人(일본인)이 그를 朝鮮人(조선인)이라고 區別(구별)짓기 始作(시작)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在日(재일) 朝鮮人(조선인)이 스스로가 朝鮮人(조선인)이라는 생각을 떨쳐낼 수 없는 것은 日本人(일본인)이 그들이 자꾸 朝鮮人(조선인)이라는 것을 想起(상기)시키기 때문이다。따라서 日本(일본) 리버럴이 스스로를 在日(재일) 日本人(일본인)이라고 부르는 것은 (적어도 日本(일본) 안에서) 在日(재일) 朝鮮人(조선인)蔑稱(멸칭)으로 쓰이고 있으며 그러한 蔑稱(멸칭)自稱(자칭)이 아니라 오로지 남으로부터 불리는 것이라는 아주 基本的(기본적)理解(이해)조차 못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들의 레토릭에는 세 種類(종류)가 있는데 첫째로 人權(인권) 擁護(옹호)民主主義(민주주의) 促進(촉진)이라고 主張(주장)하는 것입니다。여기서는 이라크戰爭(전쟁)念頭(염두)에 두고 있습니다。둘째、「文明(문명)衝突(충돌)」로 이야기하는 것이지요。(…) 셋째、新自由主義的(신자유주의적) 經濟學(경제학)法則(법칙)들을 받아들이는 것 ()에 다른 選擇肢(선택지)는 없다고 主張(주장)하지요。(…) 월러스틴(Immanuel Wallerstein)은 이렇게 權力(권력)에 의해 歪曲(왜곡)普遍主義(보편주의)를 「유럽() 普遍主義(보편주의)」라 부르고、眞正(진정)普遍主義(보편주의)、「普遍的(보편적) 普遍主義(보편주의)」를 이것에 對置(대치)시키라고 呼訴(호소)합니다。이 두 ()의 「普遍主義(보편주의)」 사이에서 選擇(선택)()할 수 없다。어떤 超個別主意的(초개별주의적) 立場(입장)(中略(중략))으로 물러날 수 없다。왜냐하면 超個別主意(초개별주의)()은 유럽() 普遍主義(보편주의)現在(현재) 權力(권력)掌握(장악)()들의 힘—그들은 非平等主意的(비평등주의적)이며 非民主主義的(비민주주의적)世界(세계) 시스템의 維持(유지)를 꾀한다—에 ()隱蔽(은폐)降伏(항복)과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戰後(전후) 日本(일본)까지 이어진 吉田松陰(요시다 쇼인)()評價(평가) 하나만 보더라도 明治(메이지) 以後(이후)對外(대외) 侵略(침략)()正當化(정당화)가 얼마나 뿌리 깊은지 알 수 있습니다만、그 中心(중심)에는 尊皇(존황) 思想(사상)이 있고 옛 日本軍(일본군)의 「征伐(정벌)」이라는 獨特(독특)한 말에서도 그것을 찾을 수 있습니다。즉 天皇(천황)軍隊(군대)에 대드는 ()는 잘못을 저지른 것이며 野蠻(야만)이고 落後(낙후)()들이므로 그들을 「征伐(정벌)」해야 한다는 思想(사상)입니다。

金時德(김시덕) 敎授(교수)의 『日本(일본)對外(대외) 戰爭(전쟁)』(異国征伐戦記の世界ー韓半島、琉球列島、蝦夷地)에서 槪論(개론)征伐(정벌)이라는 말의 歷史(역사)를 다뤘던 것이 함께 떠올랐다。


天皇制(천황제)는 없어질 運命(운명)이고、없어지는 것이 좋다는 생각이 知識人(지식인)들 사이에는 있었습니다。하지만 그 知識人(지식인)自身(자신)二重的(이중적)이어서、論理的(논리적)으로 생각하면 그렇지만 現實的(현실적)으로는 그렇지 않다는 構圖(구도)()內面化(내면화)·習性化(습성화)되어、只今(지금) 高橋(다카하시) 先生(선생)이 이야기했듯이 明晳(명석)하게 말하는 사람은 거의 없어진 것으로 보입니다。


安倍(아베) 政權下(정권하)에서 政治(정치)暴走(폭주)繼續(계속)될 때 護憲(호헌) 立場(입장)에서 그것에 브레이크를 거는 唯一(유일)存在(존재)明仁(아키히토) 天皇(천황)이리라는 肯定的(긍정적)評價(평가)가 리버럴() 知識人(지식인)들 속에서도 눈에 띕니다。하지만 여기서 天皇(천황)役割(역할)期待(기대)하는 것 自體(자체)가 바로 天皇制(천황제)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 마지막에 高橋哲哉(다카하시 데쓰야)의 「돌아보니 羞恥心(수치심) 없이는…」(かえりみて羞恥の感なきを……)3가 실려있는데、이로부터:

그러나 高見(다카미)4의 그런 感慨(감개)에는 바로 한 달 ()까지 「日本文學報國會(일본문학보국회)」에서 活動(활동)했던 作家(작가)限界(한계)도 보인다。그는 自國(자국) 政府(정부)()當然(당연)히 주어져야 했던 自由(자유)라고 썼지 人民(인민)自國(자국) 政府(정부)保障(보장)하도록 만들었어야 할 自由(자유)라고 쓰지 않았다。그가 부끄럽게 생각한 것은 自國民(자국민)自由(자유)剝奪(박탈)한 「自國(자국) 政府(정부)」가 剝奪(박탈)解除(해제)하려 하지 않았다()이었지、人民(인민)自國(자국) 政府(정부)와 싸워서 그것을 무너뜨리고 스스로 自由(자유)獲得(획득)할 수 없었다는 ()이 아니다。高見(다카미)感覺(감각)如前(여전)大日本帝國憲法(대일본제국헌법)() 段階(단계)에 있었다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1. ()을 읽으며 高橋(다카하시) 先生(선생)의 다른 著書(저서)犧牲(희생)의 시스템 福島(후쿠시마) 沖繩(오키나와)』(犠牲のシステム――福島・沖繩)도 읽어봐야겠다고 생각하긴 했다。마침 같은 譯者(역자)韓承東(한승동) 記者(기자)가 옮겼다。↩︎

  2. 日本(일본)政治學者(정치학자) 杉田敦(스기타 아쓰시)↩︎

  3. 原文(원문)은 『季刊前夜(계간전야)』 2006()()에 실렸다。↩︎

  4. 日本(일본)作家(작가) 高見順(다카미 준)↩︎